제이팔로 다이어리

검색어 : 겸손의왕 (1)

  1. 20191014 수기르타라자, 테드 제닝스 강연 2019.10.15

20191014 수기르타라자, 테드 제닝스 강연

경동교회 처음 가봄
이름값하는 사람들
요즘 왠만한 교회에는 다 있는 프로젝트 스크린이나 LED 화면이 없다.
사실 자료집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수기르타자라와 테드 제닝스가 앉아서 안병무 얘기하는 강연 ㅋ

마태복음 족보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창녀, 간음한 여인 같은 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이다.
예전엔 이처럼 여성이 족보에 등장하는 것이 여성의 지위를 높이 평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라의 구조를 따르는 마태복음의 특성상 예수 족보에 나타난 여인들은 예수를 욕되게 하고 더럽히는 존재들로 여겨졌을 것이다.
마태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 더럽혀진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고 인간으로, 겸손하게 오셨다고 말한다.
낮고낮은 자리로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인간으로 오셨다는 말은 불경스럽게 여기지 않는 우리가 창녀, 불륜녀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말하는 것은 불경스럽게 여기는 것일까?
왜 예수가 사생아로 오셨다고 하면 우리에게 걸림이 되는가? 단지 성경과 다르기 때문인가?
왜 그런 말은 예수의 겸손이 아니라 불경이나 신성모독으로 여겨지는가?
나와 창녀, 미혼모와의 간극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간극보다 크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태의 족보는 역사적 예수가 어떠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마태의 고백이다. 
이것이 예수의 문제가 아니라 마태의 문제이듯이
그를 더 낮은 모습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또한 예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 것이다. 

왜 나의 예수는 더 낮아지지 못하는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