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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 일보(Daily Step) (7)

  1. 20191017 만들기 대행진 2019.10.17
  2. 20191016 셋째 조카 탄생 2019.10.16
  3. 20191014 수기르타라자, 테드 제닝스 강연 2019.10.15
  4. 실패한 설교에 대한 반성문 2019.10.12
  5. 2019.10.3 새로운 사역지 찾기 2019.10.03
  6. 2019.9.23 빅콰이어 가스펠 클라스 2019.09.24
  7.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2019.09.22

20191017 만들기 대행진

내 외부 현수막
선포식 분과 피켓

40일 전도대행진을 앞두고 이런 저런 정리할 것들과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얼마 전 같았으면 업체에 맡겼을 디자인 작업을 요즘들어 자꾸 내게 하게 된다. 뭐 여러가지 조합해서 만드는 거야, 어설픈 템플릿 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소스가 빈약하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디자이너가 작업해놓은 몇몇 소스 파일들이 있기에 망정이지... 덕분에 요즘 포토샵을 줄기차게 돌려대고 있다. ㅎㅎㅎ 이렇게 만든 홍보물이 좋은 결과를 내는데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영상도 그렇지만 한번 쓰면 버려지는 성향이 강해서 준비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허무한 느낌이 강한데, 뭔가 결과라도 좋아야 보람이 있을 듯

 

   

20191016 셋째 조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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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셨네요", "아니요 오빠예요"

산부인과에 갔더니 다들 나를 애 아빠인줄 알고 반겨준다. 동생이 셋째를 출산하는 날, 예정보다 좀 이른 날짜인데 진통이 시작했다길래 교회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으로 왔다.

아들 둘 낳고 나서 딸을 낳길 바랬는데, 감사하게도 딸이다. 근데 누굴 닮았는지 3.7킬로의 우량아가 태어났다. 애 아빠쪽을 닮았을라나? 그래도 엄마 고생 많이 안시키고 나오는 것은 지 오빠들을 닮았다.

애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남자 조카와 여자 조카는 느낌이 다를라나?" 뭔가 보고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ㅎ

   

20191014 수기르타라자, 테드 제닝스 강연

경동교회 처음 가봄
이름값하는 사람들
요즘 왠만한 교회에는 다 있는 프로젝트 스크린이나 LED 화면이 없다.
사실 자료집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수기르타자라와 테드 제닝스가 앉아서 안병무 얘기하는 강연 ㅋ

마태복음 족보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창녀, 간음한 여인 같은 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이다.
예전엔 이처럼 여성이 족보에 등장하는 것이 여성의 지위를 높이 평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라의 구조를 따르는 마태복음의 특성상 예수 족보에 나타난 여인들은 예수를 욕되게 하고 더럽히는 존재들로 여겨졌을 것이다.
마태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 더럽혀진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고 인간으로, 겸손하게 오셨다고 말한다.
낮고낮은 자리로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인간으로 오셨다는 말은 불경스럽게 여기지 않는 우리가 창녀, 불륜녀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말하는 것은 불경스럽게 여기는 것일까?
왜 예수가 사생아로 오셨다고 하면 우리에게 걸림이 되는가? 단지 성경과 다르기 때문인가?
왜 그런 말은 예수의 겸손이 아니라 불경이나 신성모독으로 여겨지는가?
나와 창녀, 미혼모와의 간극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간극보다 크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태의 족보는 역사적 예수가 어떠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마태의 고백이다. 
이것이 예수의 문제가 아니라 마태의 문제이듯이
그를 더 낮은 모습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또한 예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 것이다. 

왜 나의 예수는 더 낮아지지 못하는가?

   

실패한 설교에 대한 반성문

설교를 하다보면 중간에 당혹스러워지는 경우들이 있다.

본문의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쓰기 시작했는데, 묵상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결론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쓰게 되는 경우 쓰다가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잡해진다. 본문 분석은 잘 되어 있는데, 결론이 나오질 않는다. 본문이 가진 아이디어를 잘못 프레이밍 한 경우들이 보통 그렇다. 이럴 경우 프레임을 바꿔주면 쉽게 풀리긴 하는데, 이미 써 놓은 단락 단위의 글들의 앞뒤를 바꿔주면서 해결이 가능하다. 이걸 쫌 일찍 깨달으면 다행인데, 열심히 쓰고 나서 결론쯤 쓰려고 할 때 결론이 왜 안써지지 생각이 들면 이런 경우다. 종종 결론을 비우고 설교단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설교는 100% 망한다.

반대의 경우는 본문에서 어떤 은혜를 받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본문 분석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쓰다보니 사실 본문이 말하려는 것이 그것이 아닌 것 같은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답이 없다. 그냥 다 갈아 엎어야 한다. 이럴 때 사람마다 해결방법이 다른데, 어찌어찌 말을 돌려서 쓰시는 경우들이 있는가 하면, 본문과는 상관없이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그냥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빠르고 마음이 편하다.

사실 두가지 경우라고 하지만 둘 다 본문을 주의 깊게 읽지 않아서 생긴 문제들이다. 같은 문제의 다른 양상일 뿐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이라 이런 경우들이 종종 있다. 미리 본문분석 잘 해서 개요까지 잘 잡혀있는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언제나 고민하지만 그래봤자 문제는 나의 나태함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아버지 오늘도 부족한 설교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2019.10.3 새로운 사역지 찾기

오랫만에 이력서를 쓰고 있다. 이 교회에 오고 이제 2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슬슬 다음 사역지를 찾아야지. 

왜 이 교회에 더 있지 않냐고? 사실 이 교회 오기 전에 연세대학교회에 있으면서 나의 포지션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청년부 하나에 사역자 둘을 붙여놓은 상황이었지. 담당 사역자는 따로 있는데 옆에 꼽사리 붙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사역지를 옮길 때 애매한 자리를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이 교회에 와서도 결국 애매한 위치에 있게 되어 버렸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처음 맡기로 했던 사역을 '나중에'라는 말에 넘어갔던 부분이 컸던 것 같다. 이전에 사무간사가 하던 일을 함께 맡고 있어서 사역 반경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맡기로 했던 부서가 날아가는 상황이 되니, 그 때부터는 그냥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어 버린 뭐 그런 상황이다. 

이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한 사람 분의 사례비를 받으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설프게 맡은 다른 부서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옷들이었고, 뭔가 빵꾸난 데 돌려쓰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옮기는 것이 답이겠다 싶었다.

오랫만에 이력서를 쓰려니 쉽지가 않다. 내 장점이 뭐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난 무슨 생각으로 사역을 했었나? 난 왜 이 교단에 와서 목사안수를 받았을까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다음 사역지는 가능하면 서울쪽으로 알아보려고 하는데, 안산에 있는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_-;; 담임목사 하려면 지방 사역 2년 경력도 쌓아야 하는데, 과연 나는 서울 컴백을 할 수 있을 것인가?

   

2019.9.23 빅콰이어 가스펠 클라스

​요즘 월요일마다 노래를 배운다. 일회성 클라스는 들어본 적 있지만 정식적인 노래공부는 처음.

내 목소리의 색깔과 질감, 온도와, 입체감 등에 대해서 녹음해보고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좋았다.

내가 어떤 목소리를 갖고 싶어하는지 말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

목소리 색깔이 사파이어 그린 같다고, 도톰하다는 표현도 좋았다. 

회색빛이라고 생각했던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소리로 들리기도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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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1동 | 산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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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놓아버린지 꽤 된 것 같네요.

그냥 살아야 되니 살아지는대로 살던 시간은 잠시 접어두고,

살아야 되는 이유를 고민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전까지 썼던 글들은 싹 접어두고,

다시 새롭게 하루하루를 써 나가려 합니다.

여기에 무엇이 담길지 모르지만 

지나간 날에 대한 것들보다는 다가올 것에 대한 설렘들이 실리길 바래봅니다.

 

마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며 서점에서 새로운 다이어리를 고르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엽니다.

다 잘못되어 버렸다고 말했던 그 자리에서 

다시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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