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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의 문제는 세습이 아니다.

명성교회의 세습을 사실상 허용하는 통합총회의 결정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있는 소식을 보게 된다. 어떤 총대들은 세습이라는 말이 옳지 않다고 했다지? 아들이나 사위를 세우는 것도 능력이라고. 교회를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키웠다고 자백하는 꼴이다. 내가 내 능력으로 세우고 내 능력으로 좋은 아들도 키워서 물려준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다. 바로 이런 말들이 세습하는 행위가 가진 진의를 드러낸다. 아무리 부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니 뭐니 핑계를 대도, 결국 자기가 세운 것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하는 말은 옳다. 경험상으로도 아들이 후임으로 오면 제3자가 후임으로 오는 것보다 교회가 안정될 확률이 높다. 후임목사 때문에 교회에 분쟁 일어나는 것을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안정만을 바란다면 아들이 오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영적인 대물림같은 헛소리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사고와 경험의 범위가 많은 부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니 특별히 이상한 놈이 오지 않고서야 그 애비가 하던 틀을 크게 벗어날리 없다. 사실상 종교 엘리트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은 아들이니 왠만한 목사보다 능력도 괜찮을 것이다. 이건 어떤 종교적인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뻔한 이치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고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김정은이 굳이 자신의 할아버지 외모를 닮으려 하겠는가? 김일성이 엄청난 미남이라서 그럴까? 

나는 김삼환 목사님과 당회의 결정이 단순히 담임목사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세상의 세습과 교회의 세습은 구분되어야 한다. 교회 세습의 문제는 부의 세습보다 교회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명성교회의 세습 결정은 교회를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교회를 안정시키려 하는 마음이 교회를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마음(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내가 일궈낸 나의 것을 나의 방법으로 앞으로도 지켜나가려는 욕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광야로 몰아내시는 손길을 거부하는 가나안의 마음이다. 작은 교회 핑계를 들어가면서 부모의 사역지를 물려받는 아들의 결정을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명성교회라는 대형교회가 그런 미담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알 것이다. 교회를 위한다는 마음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교회, 우리의 교회를 위한 것이기에 세습은 부의 축적 이전에 비판받아야 한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여길 때 이미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된다. 다윗이 아니면 안된다, 아브라함이 아니면 안된다, 바울이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 하지만 예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더 문제인 것은 통합교단의 총대들이 이것을 썩은 것을 도려내는 통증이 아니라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분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통합교단이라는 나의 바운더리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자, 세습방지법을 결의했던 바로 그 총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내 것을 지키는 결정을 하였다. 결국 예장통합 총회는 5년 후에 김하나 목사를 재청빙 할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사실상 세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이전에 자신들이 했던 세습방지법의 의미를 정면부정하는 결정이다. 사실상 한개의 대형교회가 총회 전체와 싸워 이겼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니, 그들의 욕망이 하나님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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