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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 2:1~21]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누가복음 삐딱하게 보기 2020. 4. 18. 22:12

    길고 긴 이야기를 지나서 누가는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누가의 이 기록에는 역사상에 오류가 있습니다. 분명 앞에 이야기에서 누가는 엘리사벳의 임신을 유대왕 헤롯때라고 적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왕 헤롯이 기원전 4년경에 죽기 때문에 신학자들은 보통 예수님의 탄생시기를 기원전 4년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퀴리니우스(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호적등록을 한 시기는 기원후 6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대로라면 예수님은 기원전 4년 이전이나 기원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어야 맞습니다.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런 역사적 불일치를 두고 많은 분들이 누가의 실수라고 말하며 누가복음의 작가성을 평가절하 시키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 사건들을 헷갈릴만큼 누가는 신뢰하지 못할 작가일까요? 혹시 누가의 이런 시간 배치에는 어떤 의도가 깔려있지 않을까요? 시간적인 차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적고 싶었던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퀴리니우스의 호적조사는 기원 후 6년에 헤롯의 아들인 아켈라오가 추방되고 유대와 사마리아가 로마의 직접통치를 받게 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로마의 처사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협받은 유대인들은 심한 반발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중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으킨 반란은 꽤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반란은 퀴리니우스에 의해서 진압되지만 그 잔당들은 이후에 ‘젤롯(열심당)’이라는 무장독립투쟁 세력으로 발전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다 실패했던 갈릴리 유다, 그리고 반란이 있던 해에 갈릴리 나사렛에 살던 한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기, 이처럼 상반되는 두 갈릴리 사람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누가는 이런 두가지 사건을 접목시킴을 통해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낮아짐을 통해 평화를 이뤄낼 아이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면 흔히 동방박사와 목자들이 마굿간에 나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는 연극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설정은 성경 그 어디에도 나타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마태복음의 내용과 누가복음의 탄생이야기를 짬뽕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의 탄생이야기에 목동들이 등장하지 않듯이, 누가의 탄생이야기에도 동방박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구유와 포대기에 대한 내용도 없으며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가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원래 베들레헴 사람으로 나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이야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는 누가복음의 이야기가 마태복음에서는 생소한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의 가족을 나그네로 표현하고 그 목격자로 동방박사가 아니라 목동들을 내세우는 것은 누가복음 기자의 독특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사실 마굿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를 구유에 뉘었다는 설명 뿐입니다. 오랜시간 중동문화를 연구해 온 케네스 베일리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구조에서 마굿간은 집 안에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성극에서 봤던 것처럼 여관마다 돌아다니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모습은 성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나그네였을 젊은 부부를 기쁜 마음으로 환대하였고 아이를 누일 수 있도록 짐승들의 구유를 내어주었습니다. 아이를 구유에 누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임산부를 거리로 내몰만큼 메몰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젊은 부부 뿐 아니라 수많은 나그네가 그 집에서 환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글성경에서 ‘여관’으로 번역된 헬라어 κατάλυμα 상업적으로 운영되던 여관보다는 가정집에서 손님을 대접하던 공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τόπος를 ‘방’으로 번역하는 것은 여관에 영향을 받은 의역이다. 기본적인 의미는 ‘자리, 공간’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옥구조의 단면도. 6에 위치한 마굿간이 집 안에 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사회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아우구스투스를 하나님의 아들로 칭송하며 그가 온 세상 가운데 가져온 평화의 시대를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식민지 가운데 로마의 군사적 우위를 통한 힘의 지배를 정당화 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로마에 의해서 선전되던 평화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평화일 뿐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평화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에게 저항하는 세력들은 가차없이 짓밟혔습니다. 그들이 선전하는 평화를 반대하는 모든 것들은 힘으로 짓밟는 것이 로마의 평화였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이 탄생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 ‘천군’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서 천군이란 단순히 많은 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누가는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천군은 분명 천사와는 구분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천군(στρατιᾶς οὐρανίου)은 ‘하늘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새로운 구원자의 탄생을 선포하는 자리에 하늘의 군대가 도열하고 새로운 아기가 받을 영광과 그가 가져올 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왕의 즉위식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다분히 누가의 정치적 계산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가 보장하는 거짓 평화로 가득하던 세상에 하늘로부터 전에 없던 새로운 평화를 노래하는 기쁨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로마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거짓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가져오는 진정한 평화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당시 사회의 가장 낮고 천하여 증인으로써 자격도 없는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집니다. 누가에게 있어서 태어날 아기가 갖는 의미는 유대인의 왕이 아닌 그 사회의 낮고 천한 자들 즉, 이방인들,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다가오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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