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팔로 다이어리

20191204 적응 중

새로운 교회에 와서 지난 주일 처음 인사를 드리고 열심히 적응하고 있다. 담임목사님이 한달정도 보면서 분위기를 익히라고 하셔서 강제적인(?) 휴가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지금 교회에 지원하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도시의 교회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요소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교회다. 대표적인 예로 아직도 주일 밤예배를 드린다. ㅎ 그것도 꽤 많은 성도들이 밤예배에 참여한다. 주일 밤 예배가 끝나고 교회 주차장에서 차들이 빠져나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그러면 전형적인 시골교회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젊은 층도 꽤 많다. 전체적인 규모가 지난번 오산교회보다 조금 작은데, 청년들이나 교육부의 규모는 지난번 오산과 비슷한 반면 노년층의 비율은 오히려 오산 교회보다 적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전형적인 시골교회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한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오산에 비해서 오히려 젊고 활기찬 분위기다. 물론 말못한 사정들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교회를 기대하게 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라고 하겠다.

전에도 글로 한번 썼지만 이번 교회가 마지막 부교역자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꼭 의미있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사역이 되길 기대해본다.

   

20191125 빅콰이어 가스펠 클라스 마무리

교회 사역을 하면서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인도도 하고 있고, 찬양할 일이 있으면 늘 도맡아 할만큼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내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무언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고 있는, 자유하기보다는 익숙한 틀을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단순히 목소리의 문제이기보다는 마음가짐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했고, 조금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빅콰이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겨우 3개월만에 드라마틱하게 실력이 늘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여러 강사님들의 전문적인 코칭을 받으면서 무언가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가지고 있었던 예배자로서의 마음, 찬양에 대한 열정들에 불을 되살려 주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종강콘서트를 준비하면서 1:1로 트레이닝을 받았던 시간은 지금껏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는 세심함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빅콰이어에 있으면서 참여했던 사역들도 참 좋았습니다. 교회에 묶여 있는 신분이다보니 많은 사역에 동참하진 못했지만, 참여했던 사역들에서 은혜를 끼치기 이전에 많은 은혜를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노래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래서 정규클라스도 끝까지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래도 가스펠 클래스를 잘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월이 저에게는 여러가지 변환점이 겹쳐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는데, 빅콰이어 덕분에 한 텀을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1시간 반 차를 몰고 가면서 차 안에서 사역곡과 종강 콘서트 곡들을 불러보던 시간이 참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다음 분기에는 가스펠 클라스가 없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혹시 찬양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참여해보시길 권해봅니다.^^

 

 

   

20191124 임마누엘교회 사역 마무리

2년반 정도의 짧은 사역을 마무리 했습니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만, 이번 사역지에서는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사랑으로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섬겨주신 성도님들 덕분에 사역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늘 과분한 섬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그 섬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역자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고 임마누엘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새롭게 가는 사역지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아마 기존교회 사역은 이번에 가는 교회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사역을 위해 잘 준비되어지는 부교역자 사역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배우고 훈련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우리 구원의 과정은 종종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이미지는 복음서에 나오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예수의 비유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하나님은 우리를 왜 잃어버리셨나?" 물론 이런 물음에는 정해진 답이 있다. 바로 인간의 죄의 문제... 아담과 하와, 원죄, 이스라엘의 배신 등... 우리가 하나님을 싫어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해답이 우리 삶의 환경에 적절하게 들어맞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세때처럼 내가 원치 않게 기독교인으로 태어났다가 그를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를 떠나온 경험보다는 잃어버림 속에서 태어나서 내가 원치 않게 떠나옴 당하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 놀러간 어머니가 사람들 속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이 아이를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니는 아이를 꾸짖을 것이다. "엄마가 손 꼭 잡고 있으랬잖아!! 어디 갔었어?!" 그런데 만약 그 잃어버린 아이를 20년만에 찾았다고 해보자 어른이 된 아이는 부모를 만나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왜 날 잃어버리셨나요?" 잃어버림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는가? 아니면 자식에게 있는가? 사실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고 나서 꾸짖는 부모의 마음 역시 아이의 잘못을 꾸짖기 위함이기보다는 아이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아이를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하는 소리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에 대해서 자주 말한다. 그러다보니 거기에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서 탕자를 죄인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를 방탕한 아들로 만든 아버지는 깨끗한가? 왜 우리는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하나님이 널 잃어버려서 미안하다고 하셔" "하나님이 널 지키지 못한 그날을 죽음처럼 후회하고 계셔" "하나님이 온 인생을 바쳐 지금껏 너를 찾고 계셨어" "미안해, 잘못했어"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실 다른 이의 채무를 대신 갚는 유대 제사적 대속의 개념이나 노예를 돈주고 사는 헬라적 의미가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를 자기 목숨까지 내어서라도 찾고 싶었던 성부수난적 죽음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를 잃어버린 하나님은 왜 항상 당당한가? 우리가 떠났다고 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사실 잃어버린 아이를 맘에 없는 말로 꾸짖는 엄마의 말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가 죄에 대해서 말할 때 사실 그것은 자기를 향한 채찍이 아닐까? 십자가로 걸어가는 길에 맞았던 그 채찍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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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를 드리다가 오랫만에 참 감사하게도 불경한(?) 묵상을 하게 되어 글을 옮겨본다. 물론 이런 생각이 과거에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양태론이라는 맥락속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놓는다. 하지만 몰트만 이후에 십자가의 수난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런 읽기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 리뷰



시국이 시국임에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나중에 작은 컴퓨터 화면 앞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보고 왔다.

분명히 말하지만 스포일러 있으니 날 원망하지 마시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분명 이 작품을 한번 더 볼 것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다. 어떤 이들은 개연성이나 이야기 흐름 등에 대해서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런 거 느껴질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았다. 나름 '맑음'의 가치를 뒤집는 영화의 메시지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작화가 미쳤다. 두 주인공이 스카이 다이빙 하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진짜 ㅈㄴ 멋있다.

어떤 유투버는 이 영화가 일본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하던데 나름 괜찮은 분석이라고 본다. 특히나 나는 맑음이 돌아온 세상 속에서도 누구도 여주인공의 희생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행복이 얼마나 많은 무명의 '맑음 소녀'들의 희생 위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과거의 희생제사의 문제를 가져온 시대 착오적 작품이라는 누군가의 해석은 오히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전작인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특성은 이번 작품에도 유효했다. 중간에 등장하는 타키와 미츠하가 얼마나 반갑던지, 그리고 누군가의 말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다카오와 유키노 선생님은 신주쿠 공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이번에도 RADWIMPS의 노래는 영화와 잘 맞아 떨어졌다.

   

20191031 빅콰이어 사역 참여

빅콰이어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외부 사역에 동참했다.
평소의 사역곡이 아니라 기존곡들로 이뤄진 찬양예배였지만 그래도 함께 설 수 있어서 감사한 자리.
이렇게 함께 뛰며 찬양한 경험이 언제였더라^^
11월 사역도 기대함으로~

요즘 노래배운다는 핑계로 어울리지 않게 너무 홀리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공부도 좀 해야하는데,
평일 저녁이랑 월요일까지 시간을 할애하니 어쩔 수 없이 좋은 강의나 모임들도 여럿 포기하고 있다.
일단 작정한 시간들은 잘 마무리하고 12월에 사역지를 옮기면서부터는 조절을 좀 해야겠다.

어찌저찌 하다보니 11월말이 뭔가 커다란 분기점처럼 되어버렸다.

   

20191024 골목식당을 보면서 내가 하는 생각들

백종원의 골목식당 둔촌동 편을 보고 초밥이 먹고 싶어서 무작정 집근처 초밥집을 찾아갔다.

오늘 교회에서 새로운 교역자가 한명 오는 것으로 결정됐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데 내 집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 뭐 아직 한달 넘게 시간이 남아있지만, 이제 정말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미 떠나는 것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니 딱히 불만은 없다. 목사가 되고 처음 교회를 옮기게 된다. 전도사때랑 느낌이 약간 다르달까?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들도 있는 상황이라, 다음 사역지가 구해질지 불안한 마음도 있고, 지금 상황이 그닥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마음 같아서는 개척을 하고 싶은데, 뭔가 자신감이 많이 다운된 상태라 잘 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마음에 망설임이 앞선다. 결혼할 사람이 있을 때는 이런 머뭇거림이 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그냥 겁이 많은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개척을 하고 '나는 어떤 교회가 하고 싶은 것인가'라는 물음에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예전에 블로그에 내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에 대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었는데,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일지는 모르지만, 지금보면 뭔가 알맹이가 빠져있다. 마치 초보 식당 사장이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만들어놓은 메뉴처럼.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자주 보는데, 볼 때마다 나는 교회에 대한 내 생각들을 점검하게 된다. 몇몇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대전 청년구단 햄버거집 에피소드가 그 중에 하나일 것 같다. 그때 어른들이 좋아할 거라고 만들어놓았던 한식이 가미된 떡갈비 버거가 백종원의 케챱 마요네즈 바른 기본버거에 참패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백종원은 그 메뉴가 사장님들의 머릿속에서 만든 메뉴라고 했다. 어른이라는 대상에 대한 그들의 편견으로 범벅되어 있는 버거라는 뜻이겠다.

전에 사역하던 교회 청년들을 가끔 만날 경우들이 있는데, 전에 한 친구를 만나서 내가 앞으로 할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지금 교회에 예배가 너무 많다고, 주일에 예배를 한번만 드리는 교회를 할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1주일에 한번이나 드려요?"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원래 교회를 일주일에 한번 나온다. 청년의 힘든 삶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내 시각은 일주일에 몇일씩 나와서 교사하고 임원단하는 내가 자주보는 청년들의 삶에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원래 1주일에 한번 나오면서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교회에 예배가 너무 많아서 성도들이 힘들다고 1주일에 한번만 예배 드릴거라고 했으니, 얼마나 내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진 교회의 그림인가? 

그렇게 머릿속에 있던 이상적인 교회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면서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지금껏 해온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라며 이해하고 현상유지를 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특히나 연세대에서 끊임없이 질책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자신감이 더 다운된 것 같다. 현상을 유지하고 싶은만큼 살만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내 사역에는 현장이 없다. 목회보다는 신학에 특화되어 있는 공부 위주의 삶을 살았던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그다지 어드벤티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음 사역은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로 가든, 지금 떨어져 있는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들이 있길 기도해본다.

   

20191017 만들기 대행진

내 외부 현수막
선포식 분과 피켓

40일 전도대행진을 앞두고 이런 저런 정리할 것들과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얼마 전 같았으면 업체에 맡겼을 디자인 작업을 요즘들어 자꾸 내게 하게 된다. 뭐 여러가지 조합해서 만드는 거야, 어설픈 템플릿 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소스가 빈약하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디자이너가 작업해놓은 몇몇 소스 파일들이 있기에 망정이지... 덕분에 요즘 포토샵을 줄기차게 돌려대고 있다. ㅎㅎㅎ 이렇게 만든 홍보물이 좋은 결과를 내는데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영상도 그렇지만 한번 쓰면 버려지는 성향이 강해서 준비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허무한 느낌이 강한데, 뭔가 결과라도 좋아야 보람이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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