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과 온누리교회에 대한 짧은 생각

 그래, 그 큰 교회에서 세례받는 사람 뒷조사 다 해가면서 더 지은 죄가 있는지 추궁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하겠지. 현재로서는 기독교의 회개와 세례라는 것이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문제인지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 문제를 미리 알고 대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건 사실 지금 기독교의 세례 예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인지라 온누리교회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간증도 시키니 했겠지. 전에 내가 있던 교회도 세례예식 때 성도들에게 소감문 발표 비슷한 간증을 요청했었다. 담당자가 그냥 괜찮아 보이는 사람 한명 붙잡아서 부탁하고 내용을 검토하거나 하진 않았더랬다. 그래, 죄를 지었어도 다 기억 못했을 수 있고, 회개할 때는 여 검사한테 성추행한 게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치자.
 
다만, 온누리교회가 진정 그를 주님 안에 한 형제로 여기고자 세례를 준 것이라면,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온누리교회는 교회 명의로 피해자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옳다. 그리고 가능하진 않겠지만 직접 안태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교인에게 세례를 줄 때 과거 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교육과 세례 이후 드러나는 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가르쳤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기독교의 회개와 세례에 대한 내 생각이다.
 
애초에 세례를 주기 전에 기억하지 못하는 죄, 부지중에 지은 죄 혹은 알면서도 감추는 죄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전교인이 함께 다짐해야 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회개 후에도 죄를 지을 수 있고,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지만 죄에 대한 사회적 댓가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리고 덮을 수는 없다.
 
그럼 예수님 믿고 죄 용서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나는 그 해답이 교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모른척 하시는 분이 아니며, 그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시는 분이다. 그리고 오늘 이 땅에서 그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다름 아닌 교회이다. 그 형제의 죄의 댓가를 씻어내는데 있어서 교회는 공동의 책임을 지는 집단이다. 집단이 똘똘뭉쳐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공동체가 함께 지는 것을 의미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교회가 함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낫게 하셨지만 그가 복귀하는 데에는 제사장의 인증이 필요했다. 죄에는 사회적 맥락과 책임이 동반된다. 교회가 한 영혼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은 그 사회적 맥락을 한 몸으로 감당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한 영혼을 자신들의 지체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자세일 것이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장 1~2절)

물론 이것은 지금 옆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규모의 교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그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규모에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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